사실은 날짜만 D-3이고 체감상으론 D-4 밤임을 밝혀두는 바다.
떠돌이로 살면서 체득한 것이, 보통 두 달 정도는 앞서 계획을 해두면 편하다. 대신 남들이 생각하는 즉흥적인 맛은 없다. 그래도 두 달 정도는 앞서는 것이 숙소 예약이나 비행기 티켓 등에서 유리하다. 불안정한 삶에서 그것이라도 안정돼야 하는 것이다.
런던으로 향할 날이 다가오면서 '아 가기 싫다' 생각이 강렬하게 덮치고 있지만 이미 예약해둔 비행기와 한 달 살기 숙소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간다는 느낌이다. 이미 여러번 간 곳이고 유럽에서 살아본 사람으로서 유럽에 대한 이미지가 좋지 않은데 왜 일년 전의 나는 성급하게 영국 워홀 비자까지 받고 돈을 날려가며 영국행을 결정했는지 모르겠다. 뉴질랜드에서 2년이 넘게 있었으니 거기서 나오고 싶어서, 근데 한국에 있긴 싫어서 되는대로 장기체류할 곳을 찾은 게 영국이었고, 영국 경제가 망했다 그래서 영국에서 도망쳐 나왔다는 영국 애들을 만나면서도 그러려니 했었지.
하지만 영국의 집값과 물가는 전혀 그러려니 하지 않았고 급기야 나는 2년짜리 비자를 받아놓고도 한 달 만에 태국으로 탈출할 계획을 세우게 된다. 굳이 그 돈을 들여가며 영국에서 버틸 이유가 내게 없었다. 디지털노마드의 좋은 점이 뭔데. 비싼 나라 벗어나서 싸고 좋은 곳에서 살아야지.
그래서 딱 한 달 지나서 태국 치앙마이로 가는 비행기표를 끊었고, 이제 치앙마이의 숙소를 예약하네 마네 하고 있던 무렵... 나는 에어차이나로부터 메일 한 통을 받게 된다.

너의 비행기는 끝났다.jpg
하지만 오히려 좋아
여행을 숱하게 다녔지만 비행기가 본격 취소된 건 처음인데다 중국(...) 항공이므로 당장 나는 떨었다. 고객센터는 닫혀 있었지만 예약을 했던 대행사 마이트립은 24시간 영어 콜센터를 운영하고 있었다. 커넥티드 플라이트까지 풀리펀 캔슬이 가능하다는 말을 듣고서 나는 이제 어디로 갈까 고민 중이다.
치앙마이로 어차피 가고는 말겠지만 4월은 화전으로 공기 질이 안 좋고 찌듯 더울 것이다. 그리고 기왕 영국까지 온 김에 가까운 곳에서 한 달 정도 더 있다 가는 것도 나쁘진 않지 않을까...? 하면서 에어비앤비를 뒤지는 중.
챗gpt에게 묻고 물어서 몇 개 도시를 추렸는데 포르투 아니면 시칠리아를 갈까 싶다. 부다페스트는 이미 갔다 온 곳이고 솔직히 좋은 인상을 받지 않은 곳이라서 좀 그래.
시칠리아가 끌리긴 한데... 모르겠다.
모르겠어서.
이왕 늦은 김에 즉흥적으로 정해보기로 결정했다. 어떤 즉흥이냐면...
일단 내일은 전화해서 비행기 리펀을 하고. 나오는 티켓없이 런던 입국해서. 거기서 태국 장기비자 신청하고. 비자 나오는 결과 봐가면서 쉬엄쉬엄 정하기로....
아니 뭐 좀 닥쳐서 구한다 해도, 한 달짜리 숙소 구하는 게 힘들 따름이지 당장 갈 곳이 없는 건 아닐 거니까. ....아마도? 아닐 거니까....? 최후의 보루로 치앙마이로 튀면 된다. 어차피 튈 곳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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