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생각하는 한 달 살기는 한 달 빡세게 여행이 아니고 진짜 말 그대로 한 달 살기이다.
계획이 없이 가니까 지루할 때도 있다. 시간도 많고. 일도 하고. 사실 런던에 있을 땐 딱히 할 것도 없고 해서 뮤지컬을 많이 봤다.
한 달 간 일곱 개 공연을 봤고 원래 웨스트엔드에서 이전에 봤던 극이 라이온킹, 오페라의 유령까지 총 아홉개.
나름 순위를 매겨보고자 한다.
일단 부동의 1위는 <오페라의 유령>이다
이건 엄마랑 같이 봤는데 엄마는 스토리는 안다고 해서 영어를 몰라도 잘 보겠지 했는데 여행도 고됐었나 좋은 자리에서 조시는 바람에 너무 슬펐음. 하지만 공연 자체는 가장 만족도가 높았다. 그때 봤던 배우들의 역량도 그렇고, 무대장치(스포가 돼서 어떤 무대장치라고는 말 못해...)도 인상적이었다. 아무래도 유명한 넘버가 많아서 즐기기에 좋다.
2위는 <Mrs. Doubtfire>
이번에 봤던 공연인데 유머코드도 재밌고 넘버도 좋다. 영화는 내가 본적이 없고 원작을 모르지만 일단 남주의 분장이랑 대강 인물들 생김새만 봐도 이야기가 짐작이 간다. 주인공 되는 분이 정말 연기를 잘했고 극도 촘촘하게 스토리가 좋았다. 후반부는 살짝 지루했지만 전반부가 다 이겨.
3위. <라이언킹>
엄마랑 여행갔을 때 이걸 봤어야 하는데 싶은 공연이다. 유명한 건 말할것도 없고 넘버도 좋고 무엇보다 영어를 몰라도 즐겁게 빠져들어서 볼 수 있다는 것이 특징이다. 어떻게 동물을 연기하지 싶었는데 그럴싸하게 분장을 하고 나와서 몰입이 된다.
4위 <Mean Girls>
한국에서 뭐라고 하는지 원제를 까먹었는데, 유명한 영화 원작이 있는데다가 사실 금발의 미녀가 나오는 하이틴 물의 그 전형적인 틀이 있어서 스토리를 파악하기도 쉽고 어떻게 흘러갈지도 보인다. 제목은 까먹은 주제에 이미 예전에 원작 영화를 봤기 때문에 역시나 큰 어려움 없이 극을 잘 따라갈 수 있었다. 여주인공보다도 빌런으로 나오는 키 큰 금발 언니가 정말 미친 듯한 성량과 실력을 보여줘서 재밌게 봤다. 다만 캐스트는 바뀔 수도 있다는 점. 구글 맵으로 찾아갔을 때 웬 사보이 씨어터의 뒷길로 안내해줬던 기억이 난다. 아주 헤맬 정도로 길이 어렵지는 않다.
5위 <Hadestown>
한국에서는 하데스타운이라고 할 것 같은데 실제로는 헤이디스타운에 가까운 발음인 듯.
대사 없이 전체 극이 노래로 쉴 새 없이 흘러간다. 여기 배우들 다 잘하지만 특히 페스세포네 역을 맡은 분이 어나더레벨 미쳐버렸고 완전 팜므파탈 그 자체에 나도 반해버림. 장난 아니다...
나는 원작을 모르고 봤다가 1막에서 한동안 내가 이해하고 있는게 맞아??? 물음표를 많이 떠올렸는데 원작을 모른다면 줄거리 정도는 읽고 가야 이해가 쉬울 것이다. 평범한 현대극이 아닌 데다가 등장인물들 이름도 그리스신화 그런 이름이라서 알아먹기 어려울 수 있다. 하지만 상징적이고 교훈도 있고 잘 봤다.
극장 자체는 크지 않고 대기 공간도 마땅치 않아서 미리 가지 말고 극 시작 시간에 맞춰서 가도 된다. 일찍 가도 어차피 앞에 인도에 다 줄 서 있음.
6위 <물랑루즈>
자 여기부터는 살짝 뭐랄까 추천보다는 비추천에 가깝다고 보면 된다
물랑루즈는 영화를 감명깊게 보기도 해서 진한 감정선과 화려한 무대를 상상하고 갔는데 뭔가 하나씩 다 부족했다. 내가 간 날에 여주인공 빼고 모두 대체배우였기도 했음. 근데 그중에 듀크는 대체배우인데도 너무 느낌이 좋아서 마음에 담아놓는 중. 여기는 캐스트가 바뀌어도 사전에 말해주고 이런 거 없고(우리나라도 없나?) 캐스팅 다른 걸 기록으로 안 남겨놔서 배우가 궁금할 때는 극장 직원에게 물어보고 나오자. 나는 나가서 인터넷에서 찾으면 되지 하고 나왔는데 영영 못찾았다. 왜냐? 남주, 듀크, 다른 배역을 커버하는 남자 배우가 두명 밖에 안 나와 있었는데 내가 간 날은 그 세명이 다 주연이 빠진 날이었음. 그래서 한 명이 더 커버로 올라온 건데 이 사람이 대체 어디서 왔는지 모르는 거임. 코러스에서 빼왔다고 추측하면서 가장 비슷한 생김새를 그라고 믿고 있는 중이다만 확실히 땅땅 알지를 못하니까 답답한 건 있다.
그리고 정극이라기 보다 중간중간에 팝송 유행가 엄청 나와서 그게 호인 분도 있겠지만 나는 감정몰입 산통 다 깨서 진짜 개썩은 얼굴로 관람하였다.
7워. <마우스트랩>
우리나라에는 <쥐덫>이라고 부를 것 같은데
아가사 크리스티 소설을 원작으로 한 연극이다.
원작을 보려니 스포 당하긴 싫고 해서 그냥 백지 상태로 갔다. 뮤지컬도 아닌 연극이니까 과연 한 70% 정도 알아들으면서 따라갔음
그래도 흐름은 잃지 않아서 나중에 반전 나올 때 오 하고 놀라는 맛은 있었다. 배우들의 에너지가 생생하게 느껴져서 좋았음.
근데 7위로 놓은 건 영어 잘하지 않으면 연극은 무리...라는 것 때문도 있고
극장이 낡아서 어퍼서클 가면 화장실 물이 안 내려감.
8위 <위키드>
미안한데 여기는 좀 무책임한 설명을 남겨야겠다. 한국에서 위키드를 안 봐서 비교할 수도 없네.
그냥 전체적으로 다 내 취향이 아니었던 것 같다. 처음부터 끝까지 지루해서 딴생각하면서 봤다.
9위 <Come Alive>
대망의 꼴찌...
<위대한 쇼맨> 원작. 사실 공연장 자체 시설은 최고다. 볼거리도 많고, 정말 서커스장에 온 것 같다. 이 공연은 오픈할 때 일찍 가서 둘러봐도 좋았다.
근데 꼴찌인 이유는...
영화를 토대로 한 스토리텔링이 아주 약하고 서커스 공연에 치중돼 있다. 감동을 받고 할 그런 게 없이 서커스 공연 본다는 느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배우들도 고만고만한 느낌. 그리고 난 원작 영화도 그렇게 팬은 아니었어서...... 딱히... 한데 그 원작 영화를 좋아하는 분이 가면 재밌었겠다 싶다.
'영국 런던 한 달 살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런던 웨스트엔드 뮤지컬 싸게 보는 법 (1) | 2025.06.30 |
---|---|
내가 영국 워홀 포기하고 런던을 떠나는 이유(연극 Mousetrap 후기 포함) (0) | 2025.04.10 |
Lindt 린트 두바이 초콜릿 후기(피카딜리 플래그십 스토어) (0) | 2025.04.08 |
런던 포트넘앤메이슨 본점 방문 후기 Fortnum & Mason (4) | 2025.04.05 |
런던 뮤지컬 위키드 wicked 후기…하지만 제 별점은요 (0) | 2025.03.27 |